2. 열넷째
날의 염송법
: 끝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그대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으면, 안락 존자들은 즉시 서로 융합하여 ‘大黑天대흑천의 모슴’으로 바뀔 것이며, 분노 존자들도 즉각 冥府명부를 주재하는 閻魔염마의 모습으로 바뀔 것이며, 자기 식의 변화는 다 환영을 이루어서 윤회에 빠져 들어가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만약 자기 식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면, 그대가 아무리 顯敎현교의 경전과 논서 및 밀기ㅛ의 수행법을 정밀히 수달하고 1겁의 오랜 세월을 고되게 수행 했더라도 불도를 이루지는 못한다. 하지만 하나의 법에 의지하거나 한 글자에 의지해서도 즉각 실살을 깨닫는다면 과보를 즈득할 수 있다.
망자가 실상 중음을 거치면서도 모습 相狀상상이 자기 식의 환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지 못하면, 명부를 주재하는 염마의 옥졸들이 바로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들 중 가장 큰 자의 모습은 키가 하늘가에 이르고, 그다음 모습은 수미산만 하고, 가장 작은 모습도 인체를 열여덟 개 포개놓은 높이와 같은데, 그 숫자는 우주에 충만하다.
그들이 올 때의 모습은 이를 갈고 입술을 뒤투는 데다가 두 눈은 섬광처럼 범쩍이며, 배는 거대하고 허리는 가는데다 머리칼을 묶어서 정수리에 동여매고 있다. 또 손으로는 선업과 악업을 기록한 장부를 들고서 스스로 입에서 ‘쳐라’ , ‘죽여라’ 라는 소리를 낸다. 뇌수를 빠로 피를 마시며, 시체를 찢어버리면서 그 首級수급을 취하고 다시 그의 심장을 파내는데, 이들은 벌떼처럼 쇄도해서 공간을 꽉 채운다.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이처럼 환영의 모습이 나올 때 겁내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그대가 지금 갖고 있는 몸은 宿業숙업에 감응된 ‘뜻으로 생긴 몸’ 이기 때문에 설사 자르고 죽일 지라도 멸하여 없앨 수 없다. 그대 몸의 성품은 비어 있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염마의 옥졸도 그대 자신의 識이 변화해서 이루어진 것이라서 털끝만한 실체도 없다. 비어있음을 물리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대 식으로 이루어진 환영의 모습 말고는 안락 존자, 분노 존자, 피를 마시는 존자, 다른 종류의 머리를 한 신들, 무지개빛의 테두리, 염마의 악한모습은 다 실체가 없으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깨달으면 두려움이 저절로 소멸될 것이고, 그들과 合體합체하면 불과를 저절로 증득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법을 진실하게 깨달아 마쳤다면, 그대는 반드시 정성을 다하여 수호 존자들을 공경행야 한다. 그리하여 이 중음의 함정 속에서 그대에게 다가와 구원할 때 마음속으로 ‘나는 응당 귀의하라라’ 생각하면서 삼보를 기억하고 믿고 즐겨야 한다. 그대가 수행하는 수호 존자가 누구든 마음으로 觀想관상하고, 아울러 붓다의 명호를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
‘수호하시는 자비의 성인이시여, 은혜의 가피로 중음에서 표류하는 저를 건져 벗어나게 하소서.’
다음에는 입으로 스승의 法號법호를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
‘중음에서 방황하는 저를 건져 벗어나게 하소서.
스스의 특별한 은혜로 영원히 붙잡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다음에는 피를 마시는 존자들을 믿고 즐거워 하면서 그들에게 기도하라.
‘無明무명의 어둠에 횝쓸려서 생사를 유전하는데
빛이 찬란하게
비추워서 공초를 없애주네.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들 앞에서
이끌어 주고
분노의 붓다 어머니들이
한꺼번에 쇄도해서 수호하여
중음의 함정을
안전하게 건너게 하시고
끝내 원만한 깨달음의 불과를 성취케 하네.
가까운 이와
벗들을 저버리고 터덜터덜
홀로 걸을 때
오직 식이
변한 텅빈 성품空性의
외로운 몸을 오로지
바라노니
붓다들이여, 자비의 은혜로 가피하여서
이 중음에서
두려움이나 공포가 생기지
않도록 하시고
다섯 지혜의 빛이 찬란하게 비추고 있을 때
바라노니 능히
식별해서 두려움도 공포도
없게 하소서,
성스러운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가
앞에 나타났을 때
두려움이 없는
확신으로 중음을 명료히
깨닫게 하시고
그 길의
재앙과 고통을 소멸
하소서.
실상의 근본 소리가 천 개의 우뢰처럼 으르렁 거릴 때
바라노니 六字大明육자대명으로 바뀌게 하시고
결교에서 외우는 ‘옴마니밧메홈’이란 관세음보살의 명호
이 여섯 글자를 외움으로서 육도에 태어나고 족는 문을 닫을 수 있다고
함.
宿業숙업을 따라다니다가
믿을 데도 의지할
데도 없으니
앙모하는 성스러눈 觀自在관자재보살이여, 저를 수호하소서
숙업에 감응된
고난을 감당키 어려우니
청정한 빛에
의지해 고통을 없애고
즐거움을 얻게 하시고
저 五大가
원수가 되지 않도록
생겨나지 않게 하시고
다섯 붓다의
존귀한 깨달음의 땅에
들어가게 하소서’
모든 정성을
다하여 이렇게 기도하면,
일체의 공포가 자연히 소멸되어서 의심할바 없이
일체의 공포가 자연히 소멸되어서 의심할바 없이
보신의 불도를
깨달아 들어가리라.
세 번에서 일곱 번까지 일심으로 염송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니
명심하고 절대로 잊지말라.”
세 번에서 일곱 번까지 일심으로 염송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니
명심하고 절대로 잊지말라.”
그저 명료히
깨닫기만 하면, 아무리 깊고 무거운
악업이든 혹은 아무리
미약한 선업이든 깨닫지
못한다는 건 지실로
불가능 하다. 만약 중음에서 하나한의
상세한 기르침을 거치는
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장차 투쟁
중음에 떨어질 것이다.
그때의 염송법은 제2권에서 상세히 보인다.- 끝-
그때의 염송법은 제2권에서 상세히 보인다.- 끝-
결론 : 중음의 가르침이 갖는 중요성
어떤 종교를 익혔든 간에, 혹은 그 수행이 깊고 넓든, 아니면 좁고 얕든 간에 죽을 때는 갖가지 미혹이 단박에 저절로 생겨난다. 이 중음의 기르침이 불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선정을 성취하면, 神識신식이 분리되자 마자 실상이 현현한다. 그리고 생전의 경험은 실제로 필요하다.자기 識의 진실한 성품을 깨달아 마친뒤 이 경험을 갖추었다면, 청정한 빛이 현현하는 임종 중음에서 그 효과가 아주 크다.
그리고 생전에
밀교 존자들에 대한
禪定과 觀想을 성취했다면, 실상 중음에서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들이 맞이해 이끌어
주실 때 아주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따라서 생전에
중음의 가르침을 닦아
익히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이 가르침을
믿고 받들면서 수시로
암송하고 암기해서 실답게
기억하라. 그리고
세 번씩 염송하는
것을 일상의 습관으로
삼아라. 글자 하나하나마다. 뜻 하나하나마다
명백히 이해하려고 힘쓸
것이며, 설사 원수들에게
둘러싸여서 신변이 위급할
때라도 가르침의 중대한
의미를 잊지않아야 한다.
이 법의
이름을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도 해탈을 얻기’ 라고 하는데, 설사 五無間業오무간업을
지었다고 해도 이
법을 귀로 듣기만
하면 반드시 해탈을
얻는다. 그러므로 응당
군중을 향해서 염송하고
講解강해해야 하나니, 법을 들은 사람은
혹시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중음의 경계에서는 반드시
記憶해서 한글자도 잃지
않을 것이다.
중음의 기억력은 생전보다 아홉 배나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을 향하여 널리 설 해주어야 하나니, 병상에 누운 사람 곁에서도 반드시 읽어주어야 하며, 망자의 靈 앞에서라면 더더욱 염송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세간에 널리 전파해서 누구나 성스러운 혜택을 입도록 해야 한다. 인연이있어서 이 법을 만난다면 정말로 행운이 있는 것이다.
중음의 기억력은 생전보다 아홉 배나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을 향하여 널리 설 해주어야 하나니, 병상에 누운 사람 곁에서도 반드시 읽어주어야 하며, 망자의 靈 앞에서라면 더더욱 염송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세간에 널리 전파해서 누구나 성스러운 혜택을 입도록 해야 한다. 인연이있어서 이 법을 만난다면 정말로 행운이 있는 것이다.
善을 쌓아서 慧眼을 갖춘 자가 아니면 이 법을 만나기란 지극히 어려우며,
설사 법을
만났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오직 이
법을 듣고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한다면
스스로 초월해 해탈할
수 있다.
이처럼 보기드믄
법의 왕이니 진귀한
보배로 여기면서 신뢰하고
가억하라.
중음에서 실상을
경험하는 염송법은 또한
그 이름을 ’법을 듣는 것
만으로도 해탈을 얻기’, ‘주문에 의거해
해탈을 얻기’ 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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